
회사에서 후레시맨 시절이다.
영업팀에 근무하면서 한 고객사가 아닌
3~4개의 고객사를 담당하곤 했었다.
그때 나에게 처음 담당을 맡겼던 회사는
어보X라는 반도체 팹리스 업체였다.

처음이다 보니 어리바리하고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실제로 '사급', '도급' 이라는 뜻도
나는 구분하지 못했다.)
공정도 익숙하지 않아 상담도
엉망이었다.
그럴 때 항상 고객 'A' 의 언성은
조금씩 높아졌고
슬슬 반말도 섞어가며
나를 가르치듯이 요청사항을
요구하곤 했다.
" 꼰동씨, 아 이게 아니라 저거잖아 "
" 꼰동씨, 나 너랑 말 못하겠어
우대리 바꿔봐.. "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자존감은 낮아졌지만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나는 대리고 부장이고 붙잡고 물어보고
실제로 생산 운영에 무릎을 꿇다시피
배우고 또 배웠다.
어느 날 엄청 바쁜 날이 있었다.
내가 맡고 있던 4개의 업체 중 3개의
업체에서 동시에 요청사항이 들어온 것..
나는 정신이 없었고
그러던 중 어보X A에게 전화가 왔다.
" 어 꼰동씨 바로 해결해줘야 할 부분이 있어 "
" 네 A부장님 죄송한데.. 필요사항을
메일로 보내 주시면
제가 순차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

" 내 요청 사항 금방 끝나.. 20분이면 돼. "
" 제가 그러고 싶은데.. 지금 처리하는게 있어서
조금만 양해해 주시면... "
" 싫어! "
그러면 안됐지만 나는 폭발했고
고객에게 살짝 언성을 높였다.
" 아니 부장님 제가 처리 못하겠다고
말씀드린 것도 아니고
메일로 보내 주시면 순차적으로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조금만 이따가 전화주셔도
되잖습니까?? "
언성높인 내 요청에 A 부장은
대답했고
난 전화를 집어 던졌다.
" 이런 X같은 새끼가 어디 고객한테? "
(실제로 들었음.)

부서 사람들은 다들 나를 쳐다봤고
나는 창피함과 짜증남에
나오는 눈물을 머금고
흡연장에 가서
담배를 연거푸 피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A부장에게 사과 전화를 했다.
" 부장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
분명 나는 고객에게 양해를 구했음에도
욕설을 날리는 고객에게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사과를 해야하는
모습에 직장생활에 있어 회의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영업팀에 근무하면서
별의별 고객을 다 만나봤다.
말로 조지는 고객.
실제로 주말에 본인의 회사에
방문하라고 부르는 고객.
욕하는 고객.
본인이 속해있는 밴드의 공연에
오라고 하는 고객.
이러한 고객들을 이해하는데
나는 오랜시간이 걸렸고
대리 말년차 정도 되니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지금 영화를 찍고 있고
이들에게 하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하나의 대사일 뿐이다. 나는 연기를 하고 있고
실제로 정말 나의 자존심을 파는 것이 아니다.
언젠간 이 영화는 분명 해피엔딩으로
끝이 날 것이다. "

지금까지 꼰동이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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